미국 북서부 워싱턴 주의 가장 큰 도시인 시애틀! 시애틀을 방문했다.
시애틀에 머물면서 가볼만한 곳을 찾아 나섰는데 먼저 올림픽 국립공원을 놓칠 수 없었다. 올림픽 국립공원은 지형적인 원인으로 인해 비가 많이 내린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높은 산에 부딪히면 상승기류가 생기게 되고, 이 때문에 구름이 생겨서 비가 오게 되는데 그래서 올림픽 국립공원에서는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많다고 한다. 그 곳으로 향하면서 날씨가 흐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뜻밖에 맑은 하늘을 맞이할 수 있었다.
햇살 가득한 가을을 품은 하늘은 여행의 기쁨을 더해주었는데 올림픽 국립공원에 도착해서 비지터 센터로 들어서니 마치 깊은 산속으로 들어선듯했다. Olympic National Park는 많은 방문자들이 찾고 있는 서부 최대의 야생지대 중 하나인데 이 넓은 공원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넓은 숲지대와 광활한 해안선을 따라 다채로운 풍경을 발견을 할 수 있고 그곳에서 만나는 특별한 숲은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경이로운 온대우림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을 찌르는 침엽수 숲이 보이고 나무마다 수염 같은 이끼들을 길게 달고 있었는데 온대 우림지역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아직도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서 숲을 방문하는데도 거리두기가 필요했다. 숲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차들이 길게 줄 서 있었는데 일정 시간에 맞춰 한정 차량만 숲으로 진입할 수 있었고 차 안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숲으로 못 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고 조바심마저 들었다. 1시간이 채 안되어 길게 늘어선 대기 차량이 줄어들면서 우리가 탄 차도 진입을 할 수 있었고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드디어 이끼로 뒤덮인 거대한 나무들이 보이는 환상적인 숲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시애틀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 ‘트와일라잇’에 뱀파이어가 살고 있는 숲이 바로 이곳 ‘호 레인 포레스트(Hoh Rain forest)인데 유네스코 지정 세계 자연유산이기도 하다. 독특한 산책로 호 우림은 녹갈색 이끼로 가득한 온대의 오래된 나무들로 가득하다. 산책로와 함께, 다른 세계로 이어진 듯 몇 미터가 넘는 길이의 곁가지 길도 있었다. 이 곁가지 길은 이끼가 드리워진 거대한 단풍나무가 늘어선 매혹적인 숲으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그곳에 나무들은 마치 녹색 로브를 걸친 노인의 모습처럼 서 있었다.
레인포레스트는 본래 아마존 또는 동남아 지역의 열대우림을 일컫는데 올림픽 국립공원에 이러한 열대 지역이 아닌 온대 지역에 우림이 매우 광활한 지역에 펼쳐져 있다는 것 자체가 영화 속 장면처럼 신비스럽게 느껴졌는데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몸으로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숲은 3개의 층으로 구분되어지는데 맨 윗부분은 아름드리 적삼나무들이 빼꼭하고 햇빛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의 울창한 숲 중간에 활엽수들이 있고 맨 아래 부분은 고사리 같은 작은 식물들이 가득했다. 숲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신기하고 아름다움으로 오감에서 느껴지는 상쾌함에 빠져들 정도였다. 아직 이르지만 가을 숲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여 자연 속에서 힐링의 시간을 보냈는데 계절이 바뀌는 시간을 느끼는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바쁜 일상에 지쳐 있던 마음이 초록빛 숲과 이끼가 덮인 나무 사이로 보이는 눈부신 파란 하늘 덕분에 행복으로 충만해졌다. 남녀노소가 갈 수 있는 비교적 힘들지 않은 숲길 산책을 하면서 길게 드리워진 이끼가 낀 나무 아래로 눈이 부실정도로 파란 하늘이 잔잔한 냇가에 거울처럼 비취고 있었다. 나무 꼭대기 사이에서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걸으면 어느 곳을 보아도 태초의 자연의 모습 그대로였다. 또한 호 레인 포레스트는 북미에 서식하는 다양한 종류의 커다란 나무가 많은데 키 큰 나무는 그 아래의 생태계를 어둡게 하여 아래에 있는 수백 그루의 이끼와 양치류에게 이로운 그늘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커다란 나무 중 하나가 쓰러지면 그 줄기에서 자랄 수 있는 숲에 영양과 새 생명을 제공한다. 그곳에서 자연의 역사를 따라 하이킹을 하는 동안 숲은 모든 뿌리 주위에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신비함에 놀라면서 탐험을 즐기듯이 깊숙이 들어서는 숲길은 참 아름답다. 가는 곳 마다 풍경이 다르기도 하고 초록빛 멋진 빛은 맑은 날이 아니었으면 큰 나무들 때문에 풍경이 어둡게 보일 것 같았다. 그리고 숲은 너무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그 느낌이 참 좋았는데 온갖 동화 속 주인공들이 다 숨어 있을 것 같은 그런 숲에서 지내니까 숲을 거니는 것이 더욱 행복했다.
시간이 정신없이 흐르고 멋진 숲을 보여줬던 그곳을 뒤로하고 아쉬웠지만 또 다른 기대를 안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숲을 벗어나니까 바닷가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아직 보이지는 않았지만 걸어들어 갈 때 마다 바다가 가까워짐을 알 수 있었다. Rialto Beach는 정말 이국적인 해변이었다.
강물에 떠내려 온 통나무들이 해변에 밀려 올라가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통나무를 배경으로 한 해변의 풍경이 흑백 작품사진 같아 보였다. 그곳은 자연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통나무들을 치우지 않는다고 했는데 떠내려 온 통나무들이 뭔가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워싱턴 주 바닷가의 특징은 해안에 쌓여있는 거대한 크기와 다양한 모양의 거목들이 있다는 것인데 그 고사목들의 절정을 보이는 곳이 리알토 비치라고 한다. 그리고 해안을 따라 걷다보면 다양한 크기의 자갈과 솟아 오른 바위 그리고 거센 파도가 이 해안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것 같았다.
다음날은 올림픽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멋진 곳으로 Hurricane Ridge를 향해 차를 타고 올라갔는데 산 위에 올라가는 길 중에 아름답지 않은 길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정상을 오르는 중간에 고도에 따라 경치의 모습이 달랐는데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허리케인 릿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비지터 센터에서 본 빙하사진들은 과거와 현재사진을 비교할 수 있었는데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얼마나 사라졌는지 알리는 사진인 것 같았다. 사진을 심각하게 보니까 조만간 올림픽 국립공원의 빙하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비지터 센터를 나오면 앞이 넓은 공간이 있는데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조망 포인트가 있었다. 날씨는 비교적 흐렸지만 올림픽 산의 고봉들의 파노라마 전경을 잘 볼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곳과 저 멀리 빙하가 있는 산들이 마치 같은 높이처럼 보였는데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기도 했다.
허리케인 릿지는 올림픽 국립공원 내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산악 지역이라고 하는데 맑은 날씨에는 더욱 더 환상적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눈 덮인 산을 구경하고 비지터 센터 건너편을 바라보니 초록빛 높게 솟은 나무들과 노랗게 물든 가을 풍경이 보이는 산이 보였는데 몇 몇 사람들이 오르고 있었다. 바람 부는 언덕으로 올라가 보았는데 산 중턱에 펼쳐진 운해도 장관이었다. 산 중턱에 앉아 아름다운 경치에 빠졌는데 산이 무척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보니까 내려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가는 길에 사슴 가족을 만났는데 한 번 쳐다보더니 천천히 갈 길을 갔다.
여행지에서 만난 동물들은 늘 그렇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서면 가까이하기에 먼 친구 같았다.
바닷가를 지나 다시 끝없이 지나가는 숲길을 달리는데 남편이 갑자기 차를 멈췄다. Sol Duc River 인근에 커다란 나무숲 아래로 활기찬 물줄기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물가 옆에서 물길을 고프로로 촬영하는 사람이 서 있었다. 너무 맑아 초록빛 가득 담은 물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는데 연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큰 물고기가 헤엄쳐 오르기에는 얕은 물인데 더구나 거세게 쏟아져 내리는 물살을 어떻게 거슬러 오를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연어들이 초록물결 사이로 헤엄치는 장면을 한참 동안 물속을 응시했던 사람은 산란을 위해 물 위로 역류하는 모습을 촬영하려고 긴 시간을 인내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몇 분을 기다리니까 물속에서 마치 준비운동을 하듯이 한참을 헤엄치다가 쏟아지는 물살을 힘차게 헤치고 역류하는 모습이 짧은 순간 포착 되었다. 우리가 우연히 머물렀던 장소가 바로 연어의 극적인 상류 여행을 목격할 수 있는 장소였던 것이다.
연어는 강을 거슬러 올라 11월과 12월에 지류와 강에서 산란을 관찰할 수 있다고 했다. 산란과 수정을 마친 연어들은 죽어 거름으로 쌓여 물속의 생명들과 물 밖의 생명체 새, 동물, 시냇가의 풀 그리고 나무들을 키운다.
연어들의 모습은 사는 것의 완성, 곧 죽음에 이르는 연어의 존재를 극대화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작은 풀잎하나도 소중한 연어가 있는 냇가를 지나 숲길을 조심스럽게 돌아 나오며 살아 있는 것들과 짧은 만남 속에서 스쳐가는 시간 동안 숲에서 아주 작은 존재로 한 부분이 된 것에 감사했다.
다시 쭉 뻗은 나무들이 벽처럼 서있는 숲길을 빠르게 달렸는데 솔덕 강을 지나 올림픽 산맥의 북쪽 산기슭에 101 하이웨이를 타고 서쪽으로 계속 진행하다 보면 오른쪽으로 강 같이 길고 초생달 모양의 크레센트 호수가 나온다. 크레센트 호수는 ‘딥블루‘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깊고 푸른 빙하가 만든 호수라고 한다. 거울같이 맑은 물을 바라보니 마음이 평안해지고 삶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긴 호수를 바라보며 다시 출발했는데 호수를 끼고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호수가 지니고 있는 특유의 감성이 있기에 호수를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내 마음 상태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갖게 해주는듯했다. 아름다움의 순간은 더없이 짧은 것 같다. 짧을수록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 같은데 호수를 감상하며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는 그곳에서 길게 머물지 못해서 아쉬웠다.
자연의 숨소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신비로운 온대우림을 만나볼 수 있는 곳, 게다가 숨이 막히게 아름다운 해변과 호수, 그리고 멋진 뷰포인트를 자랑하는 만년설이 있는 산까지 뭐하나 빠지는 것 없이 많은 것을 보여준 아름다움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곳, 올림픽 내셔널 파크가 많은 추억을 안겨줘서 더욱 고맙게 기억되었다.
글: 유니스 홍, 사진: 브라이언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