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이 3번 등장합니다. 나인성 과부의 독자를 살리시는 기적,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기적, 그리고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입니다. 이들은 어떻게 기적을 경험한 것일까요? 특별히 믿음이 좋았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들이 기적을 경험한 이유는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심 때문입니다. 저들이 너무나 불쌍해서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여 주신 것입니다.
독자 하나 믿고 살던 나인성 과부, 그의 아들이 죽으면 과부는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회당장 야이로의 경우, 아버지인 본인이 죽는 것이 차라리 낫지 자식이 죽는 것을 어떻게 보고 견디란 말입니까? 베다니에 살던 나사로 가정의 경우, 가정의 가장인 오빠가 죽으면 나사로의 집안은 어쩌란 말입니까? 너무나 대책 없이 절망뿐인 인생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기적을 행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절망 앞에 쓰러져 가는 심령을 그냥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십니다. 참으로 많은 가정 안에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 앞에 지쳐가고 쓰러집니다. 그러나 도움의 손길을 바라며 주님을 찾는 이들에게 주님은 그 심령을 찾아내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도우십니다. 심지어, 필요하다면 기적이라도 행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긍휼하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분을 향해 눈을 드시기 바랍니다. 따뜻한 손길로 잡아주실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교회들도 너무나 속절없이 쇠퇴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결코 그대로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긍휼하신 주님께서 교회들을 강권적으로 찾아오셔서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야단이라도 치시고 기적이라도 일으키셔서 다시 교회들이 교회답도록 하실 것입니다. 바로 부흥을 다시 허락하실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다시 이 땅의 교회들에게 부흥을 허락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다윗은 기가 막힌 웅덩이와 같은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 셀 수 없는 기적을 경험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시편 40:5).”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누구라도 어쩔 수 없는 어려움 앞에 오직 주님만 믿고 바라본다면, 주님께서 그 심령을 찾아오실 것이고 만나 주실 것이고 다윗과 같이 셀 수 없는 기적과 은혜들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편 1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