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에 꼭 늦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럴듯한 이유를 댑니다. 늘 남 탓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 주위에는 나쁜 사람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성향은 늘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나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과 상황을 탓하면, 늘 탓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사람들에게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는 방식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사회심리학에서 ‘귀인 이론’이라고 합니다. 귀인(歸因, attribution theory)이란 ‘원인의 귀착’의 줄임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원인을 어디에서 찾느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실수로 컵을 떨어뜨려서 깨졌습니다. 이럴 때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옆에 있는 사람과 부딪혔기 때문에 떨어뜨렸다고 생각합니다. 옆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부주위로 깨뜨렸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같은 사건에 대한 해석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는 ‘상황적 귀인’을, 다른 사람에게는 ‘기질적 귀인’을 강조합니다. 상황적 귀인이란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는 것이고, 기질적 귀인이란 그 사람이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께요. 어떤 사람은 늘 약속 시간에 늦고 지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늘 하는 말이… ‘오늘 따라 길이 막혀서 늦었다’고 변명을 합니다. 자신에게 ‘상황적 귀인’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이 약속 시간에 늦었습니다. 그러면 하는 말이… ‘그 사람은 원래-항상 늦는다’고 정죄를 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성격이나 기질을 탓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질적 귀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 문제는 ‘세상 탓(상황적 귀인)’하고, 남의 문제는 ‘사람 탓(기질적 귀인)’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혹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행위자’가 되어서 상황 탓을 하고, 남의 문제는 내가 ‘관찰자’가 되어서 사람 탓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성숙하려면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미숙한 사람은 모든 것이 세상 탓입니다. 아내(혹은 남편) 탓이었고, 남 탓이고, 교회 탓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늘 억울하게 당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 옆에는 가까이하기가 싫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무례하고, 나를 비난하면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이면, 그러면 나에게 문제가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야 됩니다.
사람은 평생 자기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거울이나 사진으로 보는 것도 좌우가 바뀐 평면으로만 보입니다. 이 말은 내가 날 가장 모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고, 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곧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거울 중에서도 가장 성능이 좋은 거울은 ‘가족’이라는 거울입니다. 가족 앞에서 드러나는 모습이 나의 진짜 모습입니다. 나의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은? 나를 통해서 주위 사람이 편안해 지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이 성장하면 가장 먼저 나의 가족이 행복해져야 합니다.
저는 교회에서는 목사지만 가정에서는 남편이고 아빠입니다. 저의 바램이 있다면, 가정에서도 인정받는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교회에서는 장로이고 권사님, 집사님인데, 가정에서는 아빠-엄마입니다. 그러면 가정에서도 인정받는 장로 아빠, 권사 엄마가 되셔야 합니다. 자기 가정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 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