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하나님의 목적을 벗어나서 자신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선택해서 행동하는 것이 죄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이 다른 사람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죄인은 타인의 지적을 대단히 힘들어하고 분노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의인)은 이 문제를 극복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영향력이 큰 존재일수록 비판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영향력이 큰 사람을 비판하면 자신이 더 대단한 사람이라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의 저명인사들을 비판하는 것을 즐깁니다. 이걸 반대로 생각하면 부당한 비판을 받으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죽은 개를 걷어차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의 비판이 우리에게 전혀 무익한 것은 아닙니다. 비판 중에는 반드시 내가 들어야 할 말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문제의 원인이 대부분 자신에게 있다고 고백할 때가 많습니다.
나폴레옹이 세인트 헬레나에서 “내가 몰락한 것은 바로 나 자신 때문이다. 내가 나의 가장 큰 적이자 내 비참한 운명의 원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링컨을 늘 비판하고 모욕하던 에드워드 스탠턴이 하루는 링컨에게 ‘바보 멍청이’라는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링컨이 차분하게 말합니다. “스탠턴이 나를 바보 멍청이라고 불렀다면, 그 말이 맞겠지. 그는 매번 옳은 이야기를 하니까 말이야. 내가 직접 만나봐야겠어.”
링컨은 실제로 스탠턴을 찾아가서 그가 말하는 이유를 들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이 균형입니다. 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휘둘릴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도 100%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를 만족하게 하려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을 통해서 분명히 배울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니 솔로몬처럼 ‘듣는 마음’을 갖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비판하는 사람에게 일일이 반응할 필요가 없으나, 또한 비판하는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고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중간이 무엇일까요? 신앙인에게는 해답이 있습니다. 바로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일까?’ 하는 것입니다.
참 지혜자였던 솔로몬은 말하길,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말합니다(전 7: 26).
때로는 남의 비판에 연연하지 않고 나의 길을 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개는 짖어도 경부선은 가야 합니다.
때로는 남의 비판을 귀담아듣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공감과 경청이 필요합니다.
결국 무엇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까!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그분을 믿고 신뢰하고 그 말씀을 믿고 사는 사람에게는 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