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사랑으로 사는 사람 – 갈릴리선교교회 한천영 목사

사랑으로 사는 사람 – 갈릴리선교교회 한천영 목사

우리는 주어진 일들을 나름 열심히 수행하며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 어떤 일은 감사와 기쁨이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분노와 좌절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있고, 그에 따른 감정의 이면을 보면 다음의 세 가지의 동기(Motive)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두려움’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무나 책임감이 커서 염려-두려움으로 사는 경우입니다. 그 일을 잘 하지 않으면 책망과 벌이 기다린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을 양육하면서도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늘 두려워합니다. 어떤 자녀는 부모가 원하는 살지 못할까봐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은 마음의 안개와 같습니다. 보통 안개는 어느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는데, 그 수분의 양은 물 한 컵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시면 한 모금밖에 안 되는 물의 양이, 안개가 되어서 우리의 시야를 가로막는 것입니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마귀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주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빛이 임하고, 순식간에 모든 안개는 사라집니다. 마음의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둘째는, ‘의무감’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무감으로 살아갑니다. ‘나는 보수(돈)를 받으니까 일을 한다. 나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이런 의무감은 두려움보다는 달성도가 높은 동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수동적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경영의 신 ‘마쓰시다 고노스케’가 전구 공장에 갔을 때, 눈에 띄는 한 직원이 마지못해 전구를 만지고 있었답니다. 그에게 묻기를… ‘자네는 정말 훌륭한 일을 하고 있구만’ 하고 말하자, 이 말에 직원이 반문합니다. ‘네? 저는 전구를 연마하고 있을 뿐인걸요. 이런 작업이야 누구나 할 수 있고 더 근사한 일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마쓰시다 고노스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네가 만드는 그 전구가 동네 골목길을 환희 밝힐 걸세. 늦은 밤 역에서 집까지 컴컴한 길을 겁먹은 채 걸어가야 하는 여성이 있네. 그녀는 늘 불안해하며 집으로 돌아갔지만, 오늘부터는 자네가 만든 전구 덕분에 안심하고 걸어갈 수 있지. 일하는 엄마가 캄캄한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데, 엄마는 너무 어두워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 줄 수 없지. 하지만 자네가 만든 전구가 집 안에 켜지면 아이는 늦은 밤에도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들을 수 있지 않은가.’ 우리가 하는 일의 의무가 아니라, 의미와 기쁨으로 일을 한다면 훨씬 다른 삶이 될 것입니다.

셋째는, ‘사랑’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으로 사는 사람은 두려움이나 의무감과는 다른 유형의 행동이 나옵니다. 자기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 자기의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 더 나아가서 자기의 사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일이든 적극적이며 만족도가 더 높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일의 기회도 많아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 속에서 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요한 1서 4장 7-8절>의 말씀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여길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1서 4: 18).’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더 이상 두려움으로 살지 않고, 의무감만으로도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우리의 삶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의 사명을 사랑하게 됩니다. 세상에 그것만큼 큰 축복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