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Firenze & Siena

Firenze & Siena

이탈리아 여행의 시작은 패션의 도시 밀라노를 지나서 물의 도시 베네치아 그리고 사랑의 도시 베로나를 지나, 유럽의 문화가 꽃피웠고, 모든 순간이 장엄하고 아름답게 기록되어 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피렌체 그리고 시간이 멈춘 도시 시에나를 찾아서 기대와 설렘을 안고 피렌체 중앙역이라 불리는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 도착했다.
숙소를 찾기 위해 구글 맵에 주소를 입력했는데 목적지가 잘 안 잡혔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좁은 도로 위를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 정말 힘들었다. 더구나 날씨는 좋았지만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게 했다. 예약한 숙소를 찾기 위해 에어비앤비 주인에게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없어 연락이 올 때까지 잠시 작은 젤라또 가게에서 시원 달콤한 젤라또를 먹으니까 피로가 조금 풀리는듯했다. 얼마 후, 숙소 주인이 직접 젤라또 가게로 찾아와서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숙소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고 짐을 풀고 잠시 쉬다가 이곳에서도 머무는 시간조차 아까워 바깥으로 나갔다. 이번 여행은 숙소에서 잠만 잠깐 자고 나와서 대부분 돌아다니는데 시간을 보내서 힘들긴 했지만 강행군을 했다.
피렌체의 거리는 골목골목 예쁘고 낭만이 흘렀다. 유럽에 가면 많이 걸을수록 볼거리가 많다고 하는데, 걷다보니 베키오 다리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만나 사랑에 빠진 장소로 피렌체에서 가장 로맨틱한 곳이라고 하는데 멀리서 바라본 베키오 다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섰다. 다리위의 골목길 같은 베키오 다리의 모습은 아르노 강에서 강폭이 가장 좁은 곳에 지어져있었다. 다리 위에 2-3층의 작은 집들이 촘촘히 서있는 구조가 매력적이었는데 로마시대부터 있었다는 베키오 다리 위의 가게 하나하나 마다 수많은 이야기가 묻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있는 그곳은 처음에는 푸줏간이나 대장장의 집들이었는데 소음과 냄새로 하나하나 쫓겨나고 금속 세공사들이 모여들어 이제는 여행객의 눈을 사로잡는 보석상들이 즐비했다. 아름다운 베키오 다리에서 지는 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보석상에서 구경하는 인파들을 뒤로하고 탁 트인 저편을 바라보면 어딘가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난 장소가 여기쯤 아닐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오래전 상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독특한 보석상은 기능 많은 옷장처럼 짜 맞춘 구조가 특이했는데 하나 둘 문 닫는 가게들을 구경하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저녁에 먹을 음식을 구입하고 마켓을 보니까 어느새 피렌체 주민이 된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은 아침을 카푸치노와 함께 시작했는데 길거리 작은 카페에서 일정을 확인하고 몇 분 걸어가니까 미리 예약한 우피치 미술관이 보였다. 막대한 재력을 자랑하고 4명의 교황을 배출한 메디치 가문이 대대로 미술가들을 지원하며 피렌체는 르네상스 미술의 요람이 되었고 이탈리아 미술사의 황금기를 누렸는데 피렌체가 자랑하는 미술관 중에 하나가 바로 메디치 가문이 기증한 우피치 미술관이다.
우피치는 이탈리아 말로 사무실을 뜻하는데 원래 메디치 가문이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해 궁정 안에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ㄷ’자로 설계된 우피치 미술관은 비잔틴 미술품을 비롯해서 지오토,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티치아노, 칼라바지오 등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우피치에서 두 명의 유명한 비너스를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안내도를 보면서 찾아 다녔다. 비너스의 탄생 - 바로 보티첼리의 걸작으로 조개 위에 서있는 비너스의 모델은 줄리아노 메디치의 애인 시모네테로 보티첼리가 짝 사랑한 연인이기도 하다. 같은 보티첼리 방에 전시중인 Primavera 역시 시모네테가 모델이었는데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사촌과 결혼했던 시모네테는 22살 요절했는데 보티첼리는 자신이 죽으면 시모네테의 무덤 발끝에 묻어달라고 유언했고 서른넷에 그녀 옆에 누었다고 한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의 명화를 소장하는 우피치 미술관에서 명작을 감상하는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는데 여러 날 봐도 모두 감상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미술관에서 벗어나 다시 길을 걸었다. 멋진 르네상스 문화의 건축물을 배경으로 걷는 발걸음은 너무나 기분 좋게 느껴졌다. 잠시 밖으로 나와 시뇨리아 광장에서 머물게 되었다. 예로부터 피렌체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던 시뇨리아 광장의 지금은 매우 다채롭다. 곳곳에는 피렌체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동상들 16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넵튠의 분수와 코시모 메디치를 묘사한 청동 기마상, 헤라큘레스 등 르네상스 시대 걸작들이 즐비한 또 다른 미술관에서 관람하는 듯 했다. 그리고 광장주변 식당에서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들, 악기 연주를 감상하는 사람들 르네상스시대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의 시간을 선사해주고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오랫동안 앉아있고 싶었지만 해가 저물기 시작해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데 저편에 오래된 건물에 Gucci Museo 라고 사인이 보였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 구찌의 역사가 한 곳에 모인 공간, 바로 구찌 뮤지엄에 잠시 머물렀다. 젊은 시절 패션 회사에 다닐 때 이태리 구찌를 시장조사하기 위해 자료를 뒤지고 구찌 매장에 방문했을 때 디자인 영감을 얻기 위해 공부했던 구찌를 이태리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전시실 곳곳을 구경했다. 이탈리아의 럭셔리 브랜드인 구찌는 2011년에 구찌 창립 90주년을 맞아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 한쪽에 위치한 메르칸치아 로지아 궁전에 구찌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Gucci Museo를 설립하였다.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은 곳인데 1층은 카페와 레스토랑​, 서점, 기념품을 팔고 그 위층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오래 전에 만들어진 여행가방,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애용했다는 구찌의 플로라 라인 스카프, 가방, 식기, 소품들이 전시되어있었는데 요즘시절에 가지고 다녀도 손색없는 빈티지 럭셔리 제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구찌 박물관에서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아쉬움을 남긴 채 구경만으로 눈 호강을 했다. 피렌체의 시간은 다른 곳보다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다음날은 느지막하게 일어나 느린 하루를 보내기로 했는데 몇 날 동안 강행군으로 다니는 여행에서 오는 피로감을 풀고 컨디션 조절을 잘해야 될 것 같아서였다. 많은 여행객들이 열광하고 오랫동안 머물다 가기를 원하는 도시 피렌체는 볼거리, 즐길 거리 많지만 그중에서도 여행객에게 먹는 즐거움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우연히 들어갔는데 정말 좋았던 곳이 많았다. 게다가 이곳에서도 저렴한 가격, 팁과 별도에 세금이 없이 부담감이 줄어든 상태에서 맘껏 음식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피렌체 작은 도시에서 조용한 골목 안에도 맛 집이 많았는데 토스카나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로 풍미 가득한 음식을 즐기고 또 다른 감동을 갖기 위해 다음 여행지인 시에나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인 시에나로 가는 길에는 넓게 펼쳐진 올리브와 포도밭 사이로 한낮의 토스카나 햇살 사이로 따스한 색감의 고풍스런 전원 풍경을 감상하며 시에나로 향하는 길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가까이 다가왔다.
13세기경에 피렌체와 시에나 두 도시 간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고 서로 앙숙으로 지냈고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싸움에 지친 두 도시는 평화적으로 경계를 정하자고 합의를 했는데 새벽에 수탉이 울면 두 도시 간에서 출발해 서로 말을 타고 달려 상대 도시로 향해가다 만나는 지점을 경계로 만들기로 합의했다. 피렌체는 검은 수탉, 시에나는 하얀 수탉이 울어줄 닭으로 정했다. 시에나는 하얀 닭에게 모이를 잔뜩 주고 새벽에 빨리 울어 줄 것을 기원했고 피렌체는 반대로 검은 닭을 전날에 굶겼다. 드디어 새벽이 찾아오자 배고픈 검은 닭이 밥 달라고 울었는데 배부른 시에나의 하얀 닭은 늦게 일어났고 닭 울음소리를 듣고 각 도시를 출발한 기사는 당연히 시에나에 가까운 곳이 되었고 비옥한 토스카나 땅은 대부분 피렌체의 영토가 되었다. 경쟁에서 이긴 후, 피렌체는 비옥한 넓은 땅을 배경으로 르네상스 문화가 꽃 피웠는데, 시에나는 발전이 없는 도시가 되었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오늘날 중세시대 모습을 가장 잘 보존된 멋지고 고풍스런 도시가 되었다.

암흑의 시대라 불리는 중세시대에 시간이 멈춘 도시 시에나! 피렌체에서는 오랜 흔적이 많이 보였는데 시에나에 오니까 더 오래된 중세 시대로 깊숙이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시에나에서 유명한 장소인 캄포 광장으로 가기위해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 있는데 길을 잘못 찾은 것 같았다. 광장은 보이지 않고 낡은 중세시대 건물들만 보였는데 가파른 언덕길에 지어지 건물들은 중세 시대 영화 세트장 같아 보였다. 중세시대 복장을 한 주민이 나올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인데 시에나가 시간이 멈춘 도시라고 말하는 게 실감케 했다. 언덕길을 오르면서 길을 아주 잃어버려도 두려움 없이 오히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길을 잃고 무작정 걷는데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붉은빛이 도는 광장을 만나게 되었다. 캄포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 하나로 뽑힌 곳으로 광장 바닥이 마치 조개껍질을 연상케 하는 푸블리모 궁전과 만자탑 쪽으로 기울여져 있는 것이 특이해 보였는데 방어와 보호, 포용의 이미지를 지닌 성모 마리아의 망토 형상을 딴것이라고 한다. 그 기울어진 광장 바닥에 누워있거나에 비스듬히 누워 휴식을 취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바닥에 누워있으니 하늘 사이로 궁전과 탑이 눈앞에 크게 들어왔는데 시에나에서의 진한 감동이 평화와 자유를 안겨주었다. 특히 이 광장에는 매년 팔리오 경기라고 불리는 말 경주대회가 개최되는데 안장이 없는 상태에서 기수가 말을 타고 경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수많은 사람들로 캄포광장을 가득 메운다고 한다. 캄포광장의 감동을 더욱 넓게 느끼고 싶어 두오모에 왼쪽에 두오모 박물관 옥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좁고 어두운 곳에 가파른 계단을 끝없이 올라가야할 것 같았는데 얼마 후 밝은 빛이 보이고 밖으로 나가는 옥상에 올라서니 캄포 광장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전망이 여행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었다. 캄포광장에서 보이는 두오모는 이태리의 유명한 많은 두오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에나의 두오모가 덜 알려지긴 했지만 이태리에서는 시에나 두오모에 비교할 곳이 없다고 찬사를 받을 정도로 시에나 두오모는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 중 하나라고 하는데 사실 시에나의 두오모는 완공된 작품이 아니라고 한다. 건축 당시 흑사병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었다고 하는데 미완성의 두오모가 왠지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멀리서 카메라 줌을 당겨서 건물 외관을 구성하고 있는 조각 작품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니 알 수 있었다. 작은 한 조각까지도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미완성이라고 하면 누구도 쉽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데 미완성이기에 때로는 더욱 가치 있게 보이는 것 같다. 미완성인 상태로 완전한 걸작으로 칭송받고 있는 시에나의 두오모는 미완성에서 완성에 도달하려는 예술가의 피나는 노력이 돋보이는 미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캄포광장 인근에 식당가를 벗어나 오래된 건물 사이로 중세시대를 느끼며 걷는데 막다른 골목에 오래된 식당이 보였다. 이태리에서는 어딜 가나 음식 맛이 좋아서 특별한 식당을 일부러 찾지 않았는데 메뉴판에 음식들이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재료들로 만든 음식이 주로 많았다. 야생토끼고기, 꿩고기, 멧돼지, 송아지 고기 등으로 만든 음식들 중 무엇을 먹어야할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멧돼지 고기를 토마토소스로 푸욱 삶아서 야들야들한 맛이 일품인 요리와 우동면 같은 파스타에 흑 후추와 치즈로 맛을 낸 요리를 시켰는데 맛의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미슐랭 맛 집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인에게 미슐랭 사인을 가리키며 최고라고 하니까 하이 파이브까지 하면서 기뻐했다. 시에나 역사와 같이한 식당의 내부에 진열한 사진과 장식품을 구경하고 나왔는데 우연히 방문한 그 식당은 시에나 현지에서 굉장히 유명한 식당이었다.

다시 숙소가 있는 피렌체로 돌아오니까 해질 무렵이 되었다. 피렌체를 떠나기 전 피렌체의 전경을 볼 수 있는 미켈란젤로 언덕을 오르고 싶었다.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베키오 다리를 건너야하는데, 멀리서 바라본 아르노강변과 베키오 다리가 영화에 한 장면 그대로였다.
강변을 걷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 표지를 따라가다 보면 미켈란젤로 언덕을 오르는 계단과 만나게 된다.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짧지도 않는 계단을 올려다보며 한 걸음 한걸음 올라갔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여러 곳을 걷고 또 걸어야했는데 미켈란젤로 언덕 오르는 게 생각보다 길었다. 숨을 가다듬으며 언덕 위에 도착한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피렌체의 눈부신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붉은 지붕으로 가득한 건물과 중앙에 우뚝 자리한 두오모 성당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아르노 강 모든 풍경이 그림처럼 한 눈에 들어왔다.
일몰이 시작 될 쯤에는 피렌체를 여행하는 모든 여행자들이 다 여기로 모여 있는 느낌이었다. 미켈란젤로 언덕에 온 사람들은 멋진 전경을 배경으로 어쩌면 평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그 순간을 사진과 가슴에 남기고 있었다. 미켈란젤로 광장 한 복판에는 미켈란젤로 탄생 400주년 기념 청동 다비드 상도 보였는데 높은 언덕에서 피렌체를 바라보며 서 있는 다비드의 모습은 마치 아름다운 피렌체를 지키는 영웅 같아 보였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보이는 피렌체의 전경은 예술의 중심지에서 그 옛날 피렌체의 전성기를 잠시 떠올리게 했는데, 피렌체의 모든 예술품과 건축물이 살아 숨 쉬는 듯 눈부시게 펼쳐진 전경을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보고 있는 동안 피렌체에서 아쉬운 이별을 알리듯이 해는 저편에 사라지고 있었다.
글 : 유니스 홍, 사진: 브라이언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