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해가 오는 것으로 우리가 구분하는 새해의 시간은 연속적이다.
한해를 잊고 새해를 새롭게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우리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충실하게 사는 것이, 한해를 계획하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해 새벽녘에 긴 드라이브를 했다.
차창 밖이 환해질 무렵 잠깐 졸고 있는데, 스타벅스의 뜨거운 커피향기로 남편이 잠을 깨웠다. 아직도 도착하려면 4시간 더 달려야 한다.
며칠 동안 날씨가 좋지 않아 인터넷 기상정보를 서치하다 오늘에야 잠깐 좋아진다는 정보를 확인하고 무작정 떠났다. 가는 동안 짙은 안개와 옅은 비가 잠깐 내리기도 했지만 검은 하늘과 햇빛 사이로 선명한 무지개가 반갑게 비추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외곽을 지나 나파밸리의 와이너리 투어 기차를 타기위해 들렀는데 이미 오전 11시 반 기차가 방금 떠났다고 안내원이 안타까워하면서 대신 공짜 와인 테이스팅 하는 곳의 티켓 몇 장을 선물로 주었다. 비가 내리는 기차투어는 낭만적일 것 같았지만 런치, 디너가 있는 기차투어는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내심, 기차가 먼저 떠난 것이 고마웠다.
나파밸리 다운타운에서 점심을 먹고 겨울 와이너리를 돌아보러 나파밸리 외곽 길을 달렸다.
나파밸리의 유명한 와이너리인 Grgich Hills Winery(걸기크 힐스)는 예전보다 테이스팅 가격도 올랐고 와인인심도 예전 같지 않았다. 대신 공짜로 준 와인 글래스들이 얄팍한 인심을 채워준 것 같다.
비가 다시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와이너리는 아트와 잘 어울린다. 아트와 와이너리의 조화를 감상하기위해 이름자체만으로도 아트갤러리 같은 Hess Collection이라는 와이너리를 찾아 나섰다.
아트가 있는 와이너리 가는 길은 깊게 숲이 우거진 곳으로 비가 와서 그런지 더욱 운치 있어 보였다. 한참을 달리다가 입구부터가 작품 같은 단풍이 멋있게 물든 나무와 담쟁이 넝쿨이 빗 사이로 아름답게 보였다. 건물 밖에는 커다란 조소 작품이 몇 군데 놓여 있고 안으로 들어서니 모던한 인테리어가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다. 아래층 와인 테이스팅하는 곳에는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다. 웹사이트에 와인 맛에 대한 언급이 없는걸 보고 와인 테이스팅은 하지는 않았다.
이층에는 잘 이해하기 힘든 모던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벽에는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페인팅과 바닥에 흙덩어리가 작품으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어두운 전시장 안에 세군데 창에 빛이 작품처럼 비추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서 비 내리는 창밖을 보았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창밖에 풍경이 또 다른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Hess Collection은 스위스에서 온 가족들이 4세대에 걸쳐 이곳에서 부동산과 와이너리, 아트컬렉션을 가족 비즈니스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촬영을 제한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구경만 잠깐하고 다시 나파밸리의 대표적인 와이너리인 Robert Mondavi Winery를 방문했다.
몇 년 전 봄에 친구들과 가족이 함께 들렀던 와이너리인데 비에 젖은 겨울 로버트 몬다비는 색다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와인 글래스에 연도수를 표시하며 글래스를 건네주며 비교해보라는 말에 따라 향기와 혀끝의 맛을 음미해보았다. 이제는 소몰리에(와인테이스팅하는 사람)가 다 된 것 같다. 맛의 차이를 조금씩 다르게 느꼈다. 진한 과일 향과 혀끝에 닿는 맛이 좋은 2001년도산 Cabernet Sauvignon Reserve To Kalon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겨울의 나파밸리는 포도가 모두 출하된 비수기라서 호텔 가격이 비싸지 않아서 나파 카운티 공항인근에 위치한 Meritage Resort & Spa로 예약했다.
자체 브랜드 와인 Trinitas를 생산하는 Vinyard와 와인 저장창고와 테이스팅 룸이있는 Cave가 방안에서 보이는 Meritage Resort & Spa는 나파밸리를 더욱 낭만적인 곳으로 느끼게 해주는 호텔이다.
호텔 등급(4 Stars)에 비해 피자나 파스타 등 비교적 비싸지 않은 메뉴와 Room에는 와인 한 병을 무료로 제공한다.
1박 2일에 짧은 일정이라 다음날 아침부터 서둘러 소노마 밸리를 거쳐 샌프란시스코 북쪽 해안가를 향해 떠났다.
지난여름 다녀온 Point Reyes 바닷가 근처 Tomales시를 지나서 1번 하이웨이를 타고 Marshall시로 향했다
한적한 겨울바다가 보이는 바닷가 마을이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곳을 지나서 Oyster(생굴)로 유명한 양식장을 향해서 해안선을 따라 달렸다,
바닷가 마을이 거의 멀어질 무렵에 Hog Island Oyster간판이 보였다. 생굴과 조개, 홍합이 쌓여 있는 가판대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조금 기다리는데 판매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커다란 생굴은 1더즌에 $15로 2더즌을 주문했는데 판매하는 사람이 인심 좋게 30개나 주었다. 그리고 석화 까는 시범을 보여준 뒤 석화 까는 칼과 함께 레몬, 핫 소스를 곁들여 주었다.
가판대 저편에 바비큐 시설과 테이블이 여러 개 있는 피크닉 하는 곳이 보였다. 한 테이블 만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보일뿐 아무도 없었다.
겨울 바다의 굴 양식장에서 단둘이 굴을 까서 먹는 것이 무척 썰렁했지만 아무도 이 생굴의 절묘한 맛을 모를 것 같았다.
남편이 보호 장갑을 끼고 직접 석화를 칼로 까고 있는데 무척 힘이 들어 보였다. 이윽고 힘들게 깐 석화 속에 통통하고 후레쉬한 바다냄새가나는 탄력 있는 생굴에 레몬 한 방울과 핫 소스를 살짝 뿌려 입안에 넣었다.
입안에서 녹는 맛? 아니면 입에 찰싹 달라붙는 감칠맛? 어떤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평소에 맛볼 수 없는 환상적인 맛을 한적한 바다에서 둘이만 맛볼 수 있다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생굴 30마리를 단숨에 해치웠다.
이곳은 굴 양식장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피크닉 시설이 잘 되어 있어 바비큐를 하면서 굴이나 조개류를 먹으면서 가족과 하루 즐길만하다.
모두가 알다시피 굴은 바다의 우유라고 할 정도로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라고 하는데 싱싱한 굴을 먹기 좋을 때는‘R’자가 없는 달인 May, June, July, August를 피하고,‘R’자가 있는 달 September~April (9월부터 4월) 에 먹기 좋다고 한다.
굴 양식장을 벗어나 다시 해변마을을 지나 산언덕을 오르락 내리락 길따라 달리고 있었다. 차창밖 풍경을 보는데 저편 먼 바다위로 밝게 빛나는 해가 구름 사이를 비추고 있었다.
지난 세월은 정신없이 일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이제야 아쉬움이 남는다. 내 아쉬움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세월만 흐르니 아쉬움은 얼른 접고 밝은 새해를 맞이해야 하겠다.
지난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해를 맞으면서 어김없이 소망이나 목표를 생각해 본다. 이것저것 목표를 그려보다가 그리 거창한 것이 없어 머뭇거려 진다.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소망이나 목표가 단촐 해지는 것 같다. 돌아오는 새해에도 맘속에 담아둔 목표가 이루어지길 소망하며 내가 아는 모든 분들도 늘 건강하고 원하는 소망이 이루어지는 한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바다 위 태양의 빛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비춰지기를 소망했다.
산 아래로 내려오면서 다시 해변 가 갯벌이 있는 곳에 겨울 철새들 소리가 자연의 음악연주처럼 싱그럽게 들렸다. 저 멀리서 그곳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모습과 함께 어울러져 한 폭의 아크릴 풍경화 같아 보였다.
일을 위한 여행을 하는 동안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 밸리 매거진도 여행을 하다가 함께 생각해낸 비즈니스이다. 함께 여행하면서 일상적인 대화뿐만 아니라 일에 대한 계획과 아이디어를
함께 구상한다.
긴 장거리 여행의 많은 대화 속에
서 비즈니스에 필요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도착하면 그 일들을 바로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함께 추구하는 일들이 완성되어지는 것에 대해 감사와 만족을 얻는다.
일간지 신문사에서 경험을 해 봤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매체를 만든다는 것이 쉽진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많이 부족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처음 가볼만한 곳에 대한 글을 쓸 때 정말 머리가 아팟다. 글을 쓴다는 것이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절감 했다.
쓰고 또 지우고를 반복하면서 헤매고 있는데 남편이 용기를 주었다. 지금 친한 친구가 바로 옆에 있다고 생각하고 친구에게 있었던 일을 전한다고 생각하면서 써보라고 했다.
친구에게 마음을 전하듯이 쓰니까 그 후부터 글을 쓸 때, 전보다 어렵지 않게 쓰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전달자라는 역할이 보람이 되었다. 겉으로만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가식적인 글이 아닌, 마음을 전하는 전달자가 되고 사람들과 긍정적인 사고를 함께 나누는 매체를 만들고자 한다. 바로, 밸리 매거진의 모토는 ‘Think Positive’인 것이다.
*11년 전 이맘때의 글과 사진이 실렸던 매거진 책장을 넘겨보면서 추억에 잠겨 본다.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COVID-19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아 힘들어하는 이웃들을 보면서 함께 힘들어진 현실에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이 커지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다고 하지만, 분명 얻은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알게 된 가족 사랑을 통해 아무쪼록 모든 가정의 온전한 회복을 소망하며 긴 장거리를 함께 가는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이 늘 함께 한다는 감사함으로 다가오는 새해에는 다시 힘을 내어 함께 더 많이 웃는 날이 많았으면 한다. 글: 유니스 홍, 사진: 브라이언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