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뜻밖에 손님이 방문하게 되어 반가움과 동시에 부담감이 교차했지만 몇 년 전 한국 방문 때 만났던 어린 조카가 이제 대학생이 되어 다시 만나니까 반가움과 기쁨으로 환한 미소로 반겨졌다. 미국에 사는 일부 한인들에게 여름은 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한국의 친척이나 친구들의 방문이 있는 계절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나 친척들을 맞는 것이 반가운 일이지만 바쁜 생활 속에 시간을 내어 공항으로 픽업을 나가고 숙식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이며 때론 직접 차를 몰고 캘리포니아는 물론 인접한 타주에 이르기까지 관광가이드 역할까지 해야 한다. 손님 접대를 미덕으로 여기는 정서 탓에 한인들에게 고국의 손님은 한편으론 반갑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만남의 반가움은 극대화하고 상대에게 주는 불편함은 최소화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국 손님을 잘 대접하고 나면 “사는 맛이 이런 거로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보람도 느낄 수 있다.
며칠 후, 바쁜 일거리들을 잘 마무리하고 조카와 함께 즐길 여행지를 가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출발했다. 짧은 일정이지만 방문할 곳을 다양하게 했기 때문에 조금 강행군으로 여행할 것 같아 여행 준비를 좀 더 철저히 했다.
얼마 전 지진이 크게 난 진원지 리지크레스트 지역을 지나고 론 파인에 있는 Alabama Hills을 먼저 방문했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한 번에 공존하는 듯한 풍경을 보여주는 Alabama Hills에는 한 여름에도 눈 덮인 산 풍경을 바라 볼 수 있었다. 위트니 마운틴은 미국본토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알라바마 힐스는 한국에서 잘 안 알려진 곳인데, 마그마가 풍화로 깎여나가 아치가 발달된 지역으로 뒤편에는 위트니 산이 배경을 만들어 멋진 풍광을 보여주었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을 피해 오전 중에 짧은 거리의 하이킹을 했는데 알라바마 힐스에서 놓칠 수 없는 포토존인 일명 ‘Eye of Alabama Arch’는 30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 짧은 거리였다. 미국에 처음 여행하는 사람들이 흔히들 느끼는 것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넓다보니 각각의 지역마다 특색이 있고 기후 또한 각양각색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395번 하이웨이에서도 California Scenic Route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구간인 론 파인에서 맘모스 레이크를 지나 모노 레이크까지 고산지대 구간을 넘어가면서 삭막해 보이는 뜨거운 사막지대에서 벗어나 고산지대에 오르니 온도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물속에서 자라는 바위들인 Tufa가 호수위로 떠있는 모노 레이크에 또 다시 왔다. 8년 전 부모님을 모시고 방문한 적이 있는 호수에는 예전과 전혀 다르지 않은 풍경이 낮 설게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사진작가들에게는 환상적인 작품사진을 찍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우리는 그냥 그렇게 행복한 가족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 조금 서둘러 그곳에서 나왔다.
Tioga Pass를 지나서 빌리지 가는 중간에 한 여름에도 녹지 않은 눈도 만져 보기도 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호수에 잠시 발을 담가보기도 했는데 요세미티 빌리지에 가까워질수록 녹색이 짙어졌다. 오랜만에 찾은 요세미티! 방문할 때마다 명산의 정기가 느껴졌다. 저 멀리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를 바라보다가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해 폭포 가까이에 가기위해 짧은 하이킹을 했다. 산을 오르면서 함께 걷는 시간이 좋았고, 산을 오르며 오랜만에 이것저것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산의 냄새와 공기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나무마다 풀마다 그리고 물소리...묘하게 다른 향기와 소리에 자꾸자꾸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게 만든다. 어느덧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가 눈앞에 들어왔다. Bridal Veil 폭포는 물안개와 함께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이름 그대로 면사포처럼 보였다. 요세미티빌리지에서 보내다가 다음날 아침 다음일정을 준비하기위해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먹으며 스케줄을 정리했는데 한국에서 온 조카를 위해 샌프란시스코 도시와 인근 지역을 돌아다닐 계획을 잡았다. 샌프란시스코는 한국에서 온 방문객에게는 낮선 미지의 도시로 느껴질 것 같았다. 낯선 곳으로 넘어가는 시작인 여행지에서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 또 다른 추억을 남겨줄 것 같아 기대감으로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프리웨이 양 옆에 풍력 발전기들이 줄지어 보이고 베이 브릿지를 지나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진입했다. 신선한 바닷바람을 맞기 위해 창문을 잠시 열어보았는데 바깥 풍경만큼 시원하게 느껴졌다.
샌프란시스코의 관광명소로 바닷가 항구의 여러 가지 풍경을 볼 수 있는 피어에 차를 주차하고 피어39 방향으로 가 보았다. 피어 39하면 제일 먼저 바다사자들이 떠올라서 바다사자 구경하는 곳으로 가 보았는데 사람들만 많았고 왠일인지 바다사자가 몇 군데만 모여 있고 이전처럼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피어 39하면 바다사자 말고도 많은 볼거리가 있는데 부두를 따라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바닷가 쪽으로 걸어가면 좌우로 2~3층의 건물에 많은 레스토랑과 재미있는 가게들이 많이 있어서, 피어39는 샌프란시스코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라고 할만하다. 2층 선물가게에서 샤핑을 하고 식당을 찾았는데 식당 창밖에 유명한 알카트라츠 섬과 바닷가에 떠있는 배가 보이는 풍경이 그림처럼 보였다. 다시 찾은 샌프란시스코 관광지는 언제 보아도 멋진 바다 풍경을 연출한다.
피어를 벗어나 샌프란시스코 도시의 중심지를 걷자고 해서 유니온 스퀘어에 도착했다. 주중이라 생각 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걷기 좋았는데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차들도 많아지고 사람들도 많아졌다. 젊은 조카는 요세미티같은 산속보다 복잡한 도시를 흥미롭게 즐기는 것으로 보였다. 작은 면적 속에 다채로운 문화와 매력을 지닌 도시 샌프란시스코는 그 곳을 처음 경험해보는 여행객에서부터 자주 방문하는 사람까지, 모든 방문객들을 만족시킬 만한 즐길 거리가 있기 때문에 평생을 살아도 모자랄 만큼 다채롭고 매력적인 도시인 것 을 느끼게 한다. 몇 블락을 도시의 사람들과 함께 섞여 걷는데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케이블카 타는 곳이 보였다. 샌프란시스코를 자주 방문해도 케이블카를 탈 생각을 안했는데 이번 기회에 타보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케이블카는 단지 샌프란시스코의 이곳저곳을 관광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대중교통 수단으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누구나 한번은 타보는 명물 중에 명물이라고 하는데 눈으로 보고 직접 타보고 매달려 갈 수도 있는 케이블카는 특히 언덕을 내려가면서 바다를 배경으로 찍는 사진 한 컷은 필수라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케이블카는 굵은 전깃줄에 매달려 날라 가는 케이블카가 아니고 땅에 붙어서 움직이는 전차다. 앞뒤 구분이 있어서 종점에서는 turntable이라고 하는 전차대를 이용해서 사람들이 수동으로 차를 돌려서 다시 출발한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turntable을 케이블카 종점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케이블카를 타기위해 기다리는데 지루함을 달래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있는 거리의 악사와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CD도 파는데 쌓여 있는 지폐가 적지 않았다. 악사의 음악과 노래 소리 그리고 사람들과 차 소리가 뒤섞여 도시의 소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긴 줄의 행렬 중 일부가 먼저 온 케이블카로 오르고 있었는데 몇 몇 젊은 일행이 케이블카 외곽에 매달려가기를 원해 그들과 함께 케이블카는 종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멀어져가는 케이블카를 바라보며 우리차례는 언제 오나….몇 대를 보내고 조금 기다리니 케이블카 한대가 들어왔다. 몇몇 직원이 오더니 turntable 에서 케이블카 방향을 돌린다. 뭔가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들었다. 일단 케이블카에 타고 출발하려 하니까 아저씨가 티켓을 확인하거나 즉석에서 요금을 받는다. 약간의 설렘으로 기다리는데 드디어 출발신호를 하고 케이블카는 가파른 언덕을 향해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케이블카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문에 매달려 가야할 것 같은데 우리 일행은 자리가 없어 조용히 앉아 있다가 잠시 사진만 찍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언덕길을 자주 만난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실제 경사도는 생각보다 심했다. 양 옆으로 가지런하게 있는 집들과 맑은 하늘이 멋있게 보이기도 하고 바다로 이어진 다리도 보인다. 관광객들이 즐겁게 즐기는 케이블카 탑승은 이동하는 중에 중간에 현 주민 같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 했는데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맨 날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게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몇 정거장 안 되는 곳을 지나다 보니 종착역 같은 곳에 케이블카가 멈추었다. 내린 곳이 어딘지 모르고 얼떨결에 무작정 내리고 보니 어디선가 낮 익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는데 바로 해안가에 인접한 기라델리 쵸코렛 공장 건물이 보였다. 한여름 같지 않은 썰렁한 날씨 때문에 햇빛은 강하지만 긴팔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그냥 앉아서 쉬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고 여유가 느껴졌다. 저녁시간인데도 해가 질것 같지 않은 환한 하늘을 바라보며 노을 지는 풍경을 기다리다가 기라델리 건물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조카와 함께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맛보고 골목과 광장을 다니며 다양한 뷰티크와 선물 가게를 둘러보았다. 어느덧 노을이 사라지면서 어둠이 내리는 베이 뷰를 감상하며 다시 유니온 스퀘어로 돌아가는 케이블카에서는 대롱대롱 매달려 가보기로 했는데 밤바람이 생각보다 서늘했다.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기분이 오를 무렵 갑자기 케이블카가 급정지를 했는데 케이블카 안에 승객들이 모두 놀라 밖을 보니 잘못 주차된 차량 때문인 걸 알았다. 급정지 때문에 브레이크가 고장 났는지 케이블카는 꼼짝 못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 다시 출발할지 모를 케이블카에서 우리 일행도 아쉬움을 뒤로한 채 케이블카도 결코 안전한 운송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유니온 스퀘어 쪽으로 걸어갔는데 오랜만에 도시의 밤거리를 걷는 기분이 그래도 괜찮았다.
다음 숙소는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할 때마다 가는 산타로사 지역으로 정했는데 Charles M. Schulz Museum을 가기위해서다. 3년 전에 방문했을 때 돌아가면서 언제 다시 방문할 수 있을까 했는데 또 이렇게 다시 방문하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스누피 캐릭터를 좋아하는 조카를 위해 방문한 이번 방문은 스누피를 탄생하게 한 세계적인 만화가 찰스 숄츠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조카가 진지하게 전시물을 감상했다. 안내 직원에 말에 의하면 산타로사 화재 때, 찰스 슐츠가 살던 집은 불행하게도 전소되었고, 다행히 2002년에 설립된 찰스 슐츠 박물관은 화재 피해를 당하지 않아서 새로 리모델링도 하여 업그레이드된 박물관을 감상할 수 있다고 했는데 스누피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살아 숨쉬는 듯 한 조형물과 조경은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산타로사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진에 담은 양 만큼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1번 하이웨이로 시원한 해안도로를 달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조카와 여행이야기를 나누며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고 사진만 찍고 마는 여행이 아니라 깊이 있는 여행의 참의미를 담아주고 싶었다.
글: 유니스 홍, 사진:브라이언 홍